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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명언

발해의 진짜 위치, 우리가 알고 있는 게 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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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진짜 위치, 우리가 알고 있는 게 다가 아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정말 맞을까요? 보통 발해는 신라의 북쪽에 있다고 해서 한반도 북쪽 어딘가에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여러 사서에 남아 있는 기록들을 살펴보면 발해의 위치가 우리가 흔히 아는 곳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오늘은 발해의 영토를 둘러싼 흥미로운 기록들을 살펴보면서, 과연 발해는 어디에 있었는지 함께 탐구해 보겠습니다!

 

먼저, 대조영이 세운 발해의 서쪽에는 소금호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소금호수가 흔한 곳이 아니잖아요? 동아시아에서 소금호수가 존재하는 곳은 단 두 곳뿐인데요. 첫 번째는 내몽골 지역의 시린골맹이고, 두 번째는 중국 산서성 윈청시입니다. 이 지역들은 모두 현 중국 내륙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발해의 서쪽이 한반도 북부였다면, 도대체 이 소금호수는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벌써부터 궁금해지지 않나요?

 


또 다른 기록을 보면 발해의 남쪽 바다에는 다시마가 풍부했다고 합니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다시마가 많이 나는 곳을 보면, **중국 보하이만(발해만)**이 가장 유명합니다. 다시마가 대량으로 생산된다는 점을 보면, 발해의 남쪽 바다는 한반도의 동해보다는 보하이만과 더 가까운 곳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발해는 과연 어디에 있었던 걸까요?

또 하나의 특산물이 있는데요. 가자미가 발해의 대표 해산물이었다고 합니다. 가자미는 바닷물고기로 현재 대한민국 동해에서 많이 잡히는 어종인데요. 하지만 가자미는 동해뿐만 아니라 중국 랴오둥 반도와 보하이만 일대에서도 아주 흔하게 잡히는 어종입니다. 즉, 발해의 바닷가에는 가자미가 많았다는 점을 봤을 때, 발해의 위치를 동해 쪽으로 단정 짓기보다는 좀 더 넓은 범위에서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발해의 북쪽은 어땠을까요? 기록에 따르면 발해의 북쪽에는 흑룡강이 흘렀다고 합니다. 흑룡강은 현재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을 흐르는 강으로, 한반도 북부와는 거리가 꽤 있는 곳이죠. 만약 발해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한반도 북쪽에 있었다면, 흑룡강이 북쪽이라는 기록과 맞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발해는 현재의 만주와 연해주 일대, 그리고 랴오둥 반도 서쪽까지 포함한 광대한 영토를 가졌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요.

여기서 더욱 흥미로운 점은,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의 위치입니다. 사료를 보면 발해의 수도는 오늘날 중국 헤이룽장성(흑룡강성) 닝안시에 위치한 동경성(東京城) 부근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발해가 단순히 한반도 북쪽에 있었다는 주장은 점점 힘을 잃게 됩니다.


발해가 한반도 북쪽에만 있었다는 주장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요?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발해를 고구려의 후계 국가로 보며, 한반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고 인식해 왔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동북공정 이후, 발해를 중국의 지방 정권으로 포함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응해 한국에서는 발해를 더욱 강조하면서, 발해의 위치를 한반도와 더욱 가깝게 보는 시각이 강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사료를 보면 발해의 중심지는 만주 지역과 연해주, 그리고 랴오둥 반도까지 확장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발해는 단순히 한반도 북부의 작은 나라가 아니라, 훨씬 광범위한 영토를 차지한 강력한 국가였을 가능성이 높겠죠.


이쯤에서 우리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발해는 과연 어떤 나라였을까요? 단순히 고구려의 후계국가였을까요? 아니면 말갈족이 세운 독립적인 국가였을까요?

우리가 흔히 아는 역사에서는 발해를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나라라고 하지만, 중국 사료에서는 말갈족이 중심이 된 나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중국이 발해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해석일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발해의 귀족층과 왕족들은 대부분 고구려계 출신이었으며, 발해의 문자는 한자를 사용했고, 불교와 유교를 국교로 삼아 고구려와 매우 유사한 문화를 유지했습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보면, 발해는 단순히 한반도 북쪽의 소국이 아니라, 고구려의 정통성을 계승한 동북아의 강국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도가 현재의 중국 헤이룽장성에 있었고, 서쪽으로는 내몽골과 산서성에 인접하며, 남쪽으로는 보하이만까지 연결되었다면, 발해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은 영역을 지배했던 나라였던 것이죠.

그렇다면, 왜 우리는 발해를 한반도 북부에 국한된 나라로만 알고 있었을까요? 이는 역사 교육과 연구 과정에서 고구려 중심의 역사 서술이 강조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발해는 단순한 고구려의 후계 국가가 아니라, 독자적인 강대국으로 성장했던 국가였습니다.


그렇다면 발해가 이렇게 강력한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발해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부족했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발해가 멸망한 이후 고려가 발해 유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려는 신라 계승 의식이 강했고, 발해 유민들이 대거 고려로 유입되지 않으면서 발해의 역사적 흔적이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또한, 조선 시대에는 한반도 중심

의 역사관이 강조되면서, 만주와 연해주 일대의 역사 연구가 소홀해졌죠.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발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발해는 한반도 북부의 작은 나라가 아니라, 만주와 연해주, 랴오둥 반도까지 포괄하는 대제국이었습니다. 발해의 유산은 단순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 속에서 다시금 재조명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영상 어떠셨나요? 발해의 진짜 위치와 그 강역에 대한 이야기, 흥미로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잊지 마시고요! 다음에도 더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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